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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에라 동굴(Sierra cave)
사진, 글 : 그루터기(최명희)
영상 : 카라(이경아)

필리핀 뚜게가라오 카가얀밸리(Cagayan Valley)에는 볼거리로 칼라오 동굴이 있어요.
산 하나가 통째로 동굴로 이루어져 있는 듯한 거대한 동굴인데 내부가 7개의 방으로 나누어 있어요.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씨에라 동굴이에요.
씨에라 동굴은 카르스트 동굴로 분류되는데 이것은 이산화탄소와 물에 의해 석회암의 용해를 통해 형성된 석회암 동굴을 의미해요.
천장에 매달리고 땅에서 솟아오른 석회암의 형태는 자연이 만들어낸 예술~~.
눈길을 뗄 수 없는 종유석은 물론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짜릿한 동굴체험을 하게 된답니다.
필리핀이 숨겨 놓은 억 겹의 세월이 궁금하시지요?
그루터기와 함께 떠나 보시지요. 머리 부딪히지 않게 조심조심 따라오세요.
씨에라동굴(Sierra cave)은 필리핀 카가얀 발리 페냐블랑카라는 곳에 위치해 있어요.
필리핀에 378개의 동굴이 있는데 84명의 동굴탐험가에 의해서 발견되었다고 해요.
http://maps.google.co.kr/
Peñablanca, Cagayan Valley, Philippines
동굴 탐험을 하기에 앞서 씨에라 동굴에 대해 설명을 듣고
지켜야 할 사항들을 안내 받았어요.
동굴탐험에는 현지 가이드 두 명이 함께 했어요.
젤리비 그리고 아이비~
젤리비는 동굴에서만 함께 했지만 아이비는 카가얀 여행 내내 함께 하며
음료수와 먹을 거리를 많이 챙겨줬어요.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한 게 지금에서야 아쉽네요


씨에라 동굴을 탐험하는데는 왕복 2시간 이상 걸리며 중간에 화장실이 없기 때문에, 동굴로 출발하기 전 미리 다녀와야 해요.
또한, 물과 진흙에 빠질 수 있으니 조리나 샌들을 신고 버려도 될 만한 짧은 옷이나 수영복을 아예 입는 게 좋을 거 같다고 하더라구요.

탐험 준비 완료 후, 이제 본격적으로 동굴을 향해 출발~~~
씨에라 동굴 초입부터 가파른 길을 올라가야 했어요.
계단도 없는데다 조리나 샌들을 신었으니 잘 올라 갈리 만무하지요.
바닥은 길이 정비된 게 아니라 돌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고
나무 줄기들이 땅 위로 솟아 있거나 뱀처럼 구불구불 휘어져 있어 가는 길이 더 난감했어요.
이런 길에 가이드는 왜 조리를 신으라고 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는데
생각해보니 필리핀 사람들은 평소 조리를 신어서 이런데도 전혀 불편함을 모르는 거 같더라구요.
어찌되었든 어렵게 10여분쯤 올라가보니 감옥(?)같은 입구가 나타났어요.
현지 가이드 없이는 출입이 불가능한 곳이었어요.
시작부터 엄두가 나지 않았던 씨에라 동굴.
그래도 안 갈 수는 없겠지요?
전문 가이드가 앞장 서 가고 그 뒤를 차례차례 이어갔어요.
우리 여자 일행들은 베니가 한 사람 씩 도와 주고,.
남자들은 그냥 알아서 내려 오는 걸로~~
입구에 들어서면 그야말로 암흑의 세계~~, 햇볕은 한 줌도 보이지 않았어요.
어둠 속 저편에는 영화 속 괴수 ‘발로그’가 불쑥 튀어나올 것 같은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어요.
랜턴을 제외하면 완벽한 어둠의 세상인데 랜턴도 일행 모두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어서
몇 사람이 비춰주는 길을 따라 더듬더듬하며 서서히 이동해야 했어요.
순간, 정적을 깨는 감탄사. "햐~ 멋지다."
동굴 안으로 갈 수록 동굴은 진면목을 드러내기 시작했어요.
눈을 뗄 수 없는 종유석들이 시선을 압도하더라구요.
랜턴의 불빛이 닿을 때면 동굴은 어김없이 빼어난 형상의 동굴 생성물들을 보여줬어요.
억겁의 세월이 빚은 '자연예술품'은 사람의 손을 덜 탄 까닭에 온전한 모습 그대로라서 더욱 신비로웠어요.
반짝 반짝 보석처럼 빛나는 종유석..
웅장함과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동굴의 신비함에 모두 넋을 잃고 말았어요.
이것은 개의 이빨을 닮았죠?
눈앞에 다가오는 기이한 형상마다 별칭이 있더라구요.
통로에는 조명시설 하나 없었지만 동굴 중간지점 광장에 은은한 촛불 한 개를 설치해 놓았어요.
저희 모두는 탐험가이드의 지시에 따라 랜턴을 꺼 보기로 했어요.
암흑 체험을 해보자는거죠~!!
일제히 랜턴을 끄니 털 끝 하나 보이지 않는 완전한 암전,
단 몇 분이지만 절대 암흑과 절대 고요를 실감할 수 있었어요.
동굴 체험의 묘미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싶어요.
광장을 지나면 천장의 물에 의해 만들어진 종유관과 종유석, 땅에서 솟아오른 석순, 종유석과 석순이 만난 석주들이
빼곡히 자리 잡아 탄성이 절로 나오게 했어요.
이 석주도 이름이 있더라구요.
무엇을 닮은 것 같은가요?
팝콘을 닮아 팝콘 석주랍니다.
마구 뜯어 먹고 싶죠?
어디선가 들려오는 비명 소리~~~
자세히 보니 아래는 질퍽한 진흙...
발이 물이 빠져 조리 한 짝 없어지고~~ 누구는 미끄러질 뻔하고~~ 누구는 내 발이 안 나온다고 난리고~~~
동굴은 갑자기 아수라장이 됐어요.
사진은 찍을 수 없었지만 상황은 이 상태보다 더 점점 악화되어 가고 있었어요.
발 하나 들어가면 무릎까지 푹 들어가, 혼자서는 절대 헤어나오질 못하겠더라구요.
이제부터 카메라는 손도 못 대고 신발은 벗어서 들어야만 했어요.
신발이 빠지니 더 걷지도 못하고 자칫 미끄러져 넘어질 거 같더라구요.
이 깜깜한 지하 세계는 박쥐들의 생명의 공간이기도 해요.
박쥐가 있다고 해서 들여다보았는데 새끼 박쥐 다섯 마리가 모여 있더라구요.
다들 신기해서 쳐다보는...
그러나 아무리 신기해도 입 쩍 벌리면 안 된다는 거..,
박쥐 응아가 입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 절대 망각하면 아니 되어요.
박쥐 응아 생각보다 되게 크네~~~
내부로 파고들수록 눈앞에 펼쳐지는 지하세계는 절정을 이루듯 물과 시간이 빚은 '자연예술품'은 다양했어요.
종유석과 석순, 석주들이 한자리에 모여 '삼라만상'을 연출하니
세월의 풍화가 빚어낸 기묘함에 벌어진 입을 다물기가 쉽지 않았어요.
이것은 엄청 나게 단단하다는 블랙스톤..
얼마나 단단하길래... 모두들 한번씩 두들겨 보기도 했어요.
둔탁한 소리가 단단함을 인정해주기에 충분했어요.


커튼처럼 보이는 강아지의 치아와 상어의 이빨과 같은 종유석도 이채로웠어요.
다양한 모양의 종유석 하나하나가 아름다웠고 박쥐마저도 하나의 조각품처럼 느껴졌어요.
더 안쪽으로 갈 수록 진흙뻘 같아서 계속 진행은 어렵겠더라구요.
결국 다른 방향으로 나가기로 했어요.
어머나 세상에...
그 동안의 진흙은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이제는 입구보다 더 작은 개구멍을 빠져 나가야한다네요.
이미 진흙으로 버린 몸, 이젠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바닥을 기기 시작했어요.
시원할 줄 알았던 동굴도 더워 땀은 뻘뻘났고 진흙에 푹푹 빠지니... 빨리 나가고 싶더라구요.
유격훈련 하듯 낮은 포복 자세로 기어 들어갔어요.
그 와중에도 카메라에 진흙 묻을까 애지중지하는 모습..
물에 빠져도 카메라든 손은 번쩍 들고 빠져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절로 생각나더라구요.

깨~~갱 깨~~갱
낮은 포복이나 엎드려 뻗쳐 자세, 오리걸음으로 이동해야 하니
말 그대로 씨에라 굴은 `관람'이 아닌 온 몸으로 느끼는 `동굴 탐사'임에 분명했어요.
좁은 공간을 통과해야 하는 등의 쉽지 않은 코스였지만
어려운 만큼 밖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었어요.
사람마다 동굴에 대한 느낌은 다르겠지만 태곳적 자태를 그대로 간직해 '신비로운 동굴'의 정수를 본거 같아요.
동굴을 빠져나가기만 하면 될 줄 알았더니... 산 넘어 산, 나가는 길도 순조롭지 못했네요.
거의 90도 가파른 산을 내려가야 한답니다.
여길 내려 가라구?
나도 어렵게 어렵게 내려왔는데 남들이 보기엔 날듯이 내려 왔다던데...
급 초능력이 발휘됐었나 싶었네요.
어찌됐건 여유있게 내려와 사진 담아주기.,.
동굴을 탈출(?)한 것만으로도 다행이지 싶었는지 카메라에 진흙이 묻던 말던 일행들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어요.
이 사진들 없었으면 우리의 상황을 아무리 설명해도 실감나지도 않을 거 같았어요.
올리고 싶지 않은 사진이지만...
만신창이가 된 사진이라도 올리는 이유는
우리의 꾀죄죄한 모습이 이날의 현실을 조금이나마 표현해주기 때문이라지요?
마치 산사태가 난 곳에 갇혀 있다 구원의 손 길을 얻어 어렵게 살아난듯한..
그렇게 살아나 기쁘다는 듯 만세~~

하긴,.. 저흰 동굴 탐험을 마친 후로는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다 해낼 수 있을 거 같은 자신감이 생기더라구요.
환경이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결론...
지질학자인 삼촌 '트레버'와 호기심 소년 조카 '숀'이 수 억만년 전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지하세계를
로프와 렌턴 하나에 의지해 탐험하는 영화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의 한 장면을
저희도 찍은 것 같아요

기념샷 안 날릴 수 없지요?
온 몸이 진흙투성이가 되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해왔던 그 어느 체험보다도 신비스럽고 재밌었으며
탐험가가 되어 뭔가 톡톡히 해 낸 것 같은 뿌듯함까지 밀려왔습니다.
이런 게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요?